공대생 프레임

마지막으로 뻘글을 쓴지 꽤 된 것 같은데 새벽이고 우울하고 과제하기 싫어서 오랜만에 뻘글을 또 써야겠다.

공대생으로 살면서 의문을 가졌던 것 중 하나가 공대생에 대한 차별적 발언에 제제를 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학교에는 문화콜로퀴움이라는 과목이 있다. 외부에서 연사를 초청해 강연 또는 공연을 듣고 보고서를 쓰는 유닛 과목인데, 지금까지 했던 모든 강연과 공연에서 공대생에 대한 고정관념을 언급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공대생이라 안경 쓴 분들이 많은데 공교롭게도 우리 팀 멤버가 나 빼고 전부 안경을 썼다”, “공대생이라 문학에는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다”, “공대라 그런지 역시 관객에 남성분들이 많다”. 전부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안경 쓴 사람 많고, 인문학 싫어하는 사람들 쉽게 찾을 수 있고, 성비도 치우쳐 있다. 그렇지만 그게 통계적 사실을 나타내는 문장으로 사용되는 경우와, 공대생들을 일반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는 의미가 다르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하면 지나치게 강한 표현인 것 같고, 미묘한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공대생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라고 이야기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는게, 공대생에 대한 편견을 유머코드로 하는 공대생 개그의 주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대생들이다. 자기들끼리 하는 공대생 개그가 일반 대중으로 퍼지면서 그 뒤에 숨어 있는 공대생에 대한 고정관념도 같이 무의식 속에 새겨지는 게 아닐까? 공대생 유우머를 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싶은건 아닌데 그걸 외부 사람들한테 들으니까 거부감이 생기는 것 같다. 까도 우리가 깐다!

공대에 대한 고정관념이 공대생들의 미묘한 불편함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대중이 가지는 고정관념은 그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컴퓨터 공학과에는 왜 여자가 적은가’를 분석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여성들이 학과를 선택할 때 자기가 생각하는 컴퓨터 공학도의 이미지-너드, 밤샘, 천재적 번뜩임, 기계같은 반응-와 자신을 비교하고는 자신이 컴퓨터 공학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다른 과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입학한 학생들의 성적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는 관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수학과에는 여성이 적고 영문과에는 많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그래서 공대생에 대한 고정관념이 퍼지면 퍼질수록 공대생들의 다양성은 줄어들고 사람들이 ‘공대생’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로 일반화 되어 갈 것 같아 걱정이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이것까지 명쾌하게 제시할 수 있었으면 첫 문장에 뻘글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고정관념을 해소하는 문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아직까지도 자신의 고정관념을 근거로 인종차별, 성차별 발언을 하는 사람이 한참 남아 있는데, 공대생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쳐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에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 어쩐지 부끄럽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결국 대중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고정관념을 수정해야 하는데 다행히도 대중에 대한 효과적인 세뇌 수단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꾸준한 문제제기가 해답이 아닐까? 뻘글로 시작했지만 쓰다보니 공대생에 대한 고정관념에 문제제기를 하는 글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공대생 너무 놀리지 마시고, 이번 기회에 공대생에 대한 고정관념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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